1. 전세를 알아보다.
함께 나와서 살기 시작한지 벌써 다음달이면 1년이 다되어간다. 한 번 살아봅시다, 하는 마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우리만의 진실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 오피스텔은 당시 급하게 구하기도 했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매월 나가는 월세와 만만치않은 관리비까지 하면 거진 60만원이 공중분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함께 하기로 한 이상,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세 매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2. 인천 전세는 다 이래?
일단 지역을 도화동이나 제물포역 인근으로 생각하고 가장 흔히들 하는 부동산 어플로 눈팅하기 시작했다. 와, 이게 진짜 전제가 맞아? 생각보다 인천 전세가격이 너무 쌌다. 3룸 화장실 2개, 평수는 10평 중후반대지만 전세가 9,000만원이라니. 그동안 월세로 날려버린 돈들을 계산하니, 진작에 전세대출 받았으면 월 내는 돈이라도 줄였겠다, 싶었다.
그러나 부동산 어플도 어플따라 천차만별이었는데, 일단 다방은 매물 개수가 엄청 많았다. 직방에 거의 3배 정도? 그러다가 알게 된게, 직방보다 다방에 허위매물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었다. 전화하면 다들 '그 물건은 나갔어요. 어떤 물건 찾으세요?'로 시작하는 통화가 다반수였다. 그래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직방에 더 낫다는 생각에 직방으로 계속 매물을 보기 시작하고, 9천만원짜리 도심형 생활주택의 물건을 보러 간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세를 알아보면서 가장 피해야 할 단어가 나오고야 만다. 바로 '융자'가 있는 매물이라는 것. 부동산업자는 '요즘 융자 없는 집이 어딨겠어요?'하면서 융자는 당연히 있음을 어필했다. 하긴, 그렇다. 집을 현금박치기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돈 엄청 버는 연예인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심지어 박나래 50억 건물도 현찰박치기가 아니라던데 말이다. 대출이 더 유리하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또 이것저것 알아보니 이렇게 융자가 있는 전세매물같은 경우에는 '융자말소'조건으로 계약을 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봐뒀던 집중에 맘에 드는 집 등기부등본을 떼어봤다. 이게 웬일인가. 전세 9,000만원짜리 15평남짓 되는 집의 융자가 무려 1억 3천이나 껴있었다. 여러 가지 검색을 한 결과, 집값 > 전세금+융자금 이어야 한다는데 그 집이 과연 2억 2천만원이나 할 수 있는 집일까? 만약 이렇게 융자가 전세가보다 오퍼페이되는 집은 감액신청, 즉 내가 낸 전세금으로 융자금액을 줄이는 걸 조건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집의 등기는 그동안 근저당 말소 혹은 감액의 흔적이 없었다. 듣기로는 한 번 융자를 감액하거나 말소하면 이후에 집주인이 대출이 힘들다나?
3. 그렇게 알게 된 안심전세
그러던 중에 다른 곳에 마음에 드는 매물로 컨택했더니, 해당 매물은 가계약이 잡혔다고 한다. 그러면서 물어본다. "4대보험 / 재직기간 / 나이" 여부를 묻고, 원하는 지역이 있냐고 물어본다. 이 때즘 되니 어플로 집보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 매물이 그 매물이어서 지쳐간다. 해당 내용을 대답하니, 보실만한 매물을 추려서 보여준다고 한다. 자기네 매물은 모두 '융자말소'조건으로 진행한다며.
전세에 대해 알아보면서 가장 무서웠던 융자라는 것을 말소하는 조건만 가지고 있는 매물이라고 하니 덜컥 믿음이 갔다. 그래서 보기로 한 날에 투어를 시작. 내가 원하던 금액은 1억에서 1억 2천이었고, 처음엔 해당 가격에 준하는 매물을 보여주는데 4층 빌라거나, 겉이 엄청 낡은 8500 빌라를 보여준다. 남친은 식겁한다. 그러던 중에, 지금 보여드리려는 매물은 가격대가 올라가서 1억 7천이긴 한데, HUG 안심전세로 90%까지 가능한 매물이라 월 이자 얼마라고 생각하시면 된다면서 이동을 한다. 일단 이름부터 "안심"전세인데다가, 우리가 준비할 자금은 10%만 준비하면 된다니 준비자금도 신용대출해야 하는 우리에게 딱이었다.
해당 매물은 외관부터 내부까지 완벽했다. "그래, 1억 7천까지 올라가니까 집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이미 우리의 눈은 여기에 맞춰졌다. 원래 최대 본게 1억 5천이었는데, 90%나 '안심'전세라 2년 만기로 나올 시에 전세금까지 보장해주는 제도라니. 눈이 안돌아갈 수 없었다.
4. 다른 곳에서 보러온다고 합니다.
일단 출근을 해야해서 중개인(=알고보니 중개보조인)과 헤어지고 둘이 오는 길. 이미 마음은 1억 7천에 가있다. 하지만 처음 계획한 금액과 너무 커서 고민이 되긴 하는데, 이 때 중개인이 해당 매물 등기부등본을 보내준다. 융자가 9천만원 정도 있는데 말소조건이니까, 게다가 보증보험이 된다잖아? 2년 후에 아무일 없이 나올 수 있겠다, 싶을 때 전화가 왔다. 해당 매물이 너무 좋아서 다른 곳에서도 보러온다고 하는데, 계약하실거면 가계약금 200만원을 3시까지 입금하라고 한다. 등기부등본과 대조해보니 현재 집주인 명의의 계좌였다. 어떻게 할까? 남친과 고민을 하고, 혹시 모르니까 가계약금 관련된 지식인 질문들을 훑어본다. 가계약 조건은 안심 90%가 안나오면 계약금 전액 돌려주기, 융자말소 조항이 포함되어있다. 망설였으나, 이걸 놓치면 또 보러다녀야하잖아? 그런데 우리 마음에 들잖아? 가계약 송금을 해버린다.
5. 이게 바로 깡통전세
가계약금을 입금하고, 진짜 뭔가 그 집이 우리의 보금자리가 된 것 같은 들뜸으로 하루를 보냈다. 계약서 작성일자를 정하고 인터넷을 이것저것 뒤져보던 중에 HUG 안심전세관련 글을 보고야 마는데. 그 때 갑자기 기분이 쎄-해지면서 이것저것 뒤져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안심'이란 단어와 '보증'이라는 단어에 혹했는데, 그런데 이 집 1억 7천짜리 맞아? 2년 후에 100% 전세자금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에 정작 중요한 것을 안찾아본 것이다. 그래서 실거래가? 를 보는 곳에서 검색을 해보니........... 해당 빌라는 무려 올해 1억 4500만원에 "매매"가 이루어졌던 빌라였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전세금을 3천만원이나 올려서....?
신축빌라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파트와 달리 실거래가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매물의 "매매가"를 알지 못하고 "안심"전세로 대출하고 살다가 돈받고 나가면 된다네? 개꿀? 하면서 계약을 했으나, 해당 매물은 그 가격이 절대 나올수가 없다는 것. 게다가 1금융권 안심전세 매물 대상이 되려면, 해당 매물 공시지가의 1.5배의 전세금까지만 대출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 매물의 공시지가*1.5배는 1억 5천만원으로, 우리 전세금액보다 2천이나 쌌던 것. 어떻게 이런 일이?
알고보니 우리는 안심전세를 본 것이 아니라 깡통전세를 본 것이었다. 요즘 바뀐 임대차법 등등으로 빌라를 팔아버리고 싶은 집주인, 그러나 빌라 매물은 매매가 잘 안된다. 그래서 기획부동산이 접근을 한다. "원하시는 금액에 빨리 팔아드릴게요." 하면서. 융자말소는 당연히 가능하다. 왜냐하면 융자말소를 해야 안심전세 대출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토부 공시지가로 하면 매매=전세금이랑 거의 비슷하다. 여기에 차익을 내서 꿀꺽하려고 기획부동산이 덫을 친다. 바로 "외부감정"으로 공시지가를 뻥튀기해서 받아서, 그 감정서로 자기네가 정한 은행 혹은 대출상담사를 통해 영끌도 아닌 뼈까지 끌어모으는 대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내 돈으로 지들 2천만원 챙겨가고, 집주인은 집을 팔고, 우리는 그에 대한 이자를 낸다. 집주인은 바지사장에게 물건을 넘기고, 2년 뒤에 전세금을 고스란히 받고 나오려는 우리는 자칫하면 신불자가 된다.
6. 가계약금 돌려받기
일단 이렇게 정리한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계약서는 내일 작성하기로 했는데, 계약서 작성 전에 이러한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아버렸다. 생각같아서는 사기꾼들이라고 하며 가계약금을 돌려받고 싶다. 이제 막 출발하려는 우리에게 200만원은 너무나도 큰 금액이니까. 계약서 작성하러 가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며 이 계약을 무효시켜야 할까... 아니면 정말 피같은 200만원을 버려야하나? 내 돈으로 왜 저 인간들 배때지를 불려야 하는지 원통하다. 전세"보증"이라는 단어와 "안심"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러한 신축빌라, 혹은 신축급빌라에 깡통전세로 들어가고 지네들은 한 탕에 천만원을 땡기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가계약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 다음에 좀 기쁘게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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